말을 잘하고 싶다.
말을 잘하고 싶다.
최근 스터디에서 이력서 기반 모의 면접을 봤다. 답변할 만한 경험도 있었고, 참고할 자료도 충분했다. 그런데 질문을 받자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말이 튀어나왔다. 필요한 근거를 빼먹기도 했고, 꼭 말해야 할 기술 키워드를 놓치기도 했다.
피드백은 명확했다.
좋은 소스와 경험은 많지만, 실제 면접에서는 매력적인 지원자로 보이기 어렵다.
그 피드백을 반박할 수는 없었다. 실제 면접에서 나는 매력적인 지원자로 보이지 못했다. 다만 원인을 사회성 부족 하나로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더 직접적으로 고쳐야 할 문제는 생각을 짧고 명확한 말로 바꾸는 능력이었다.
말을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말하는 구조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말하기를 더 배워야겠다고 느낀 이유는 이번 면접 하나를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도 평생 말하고, 듣고, 쓸 것이다. 배워서 손해 볼 일이 없다면 지금부터 익혀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발표를 못하는 사람이었을까
대학 시절 캡스톤 디자인 작품전을 떠올렸다. 당시 만든 게임의 이름은 F 학점 피하기였다. 학생이 날아오는 F를 피하고, 체력을 모두 잃기 전에 정해진 시간 동안 버티는 방식이었다. 아래는 게임 플레이 화면과 게임 오버 화면이다.
F 학점 피하기 게임 플레이 화면. 장애물을 피하며 체력을 유지하는 모습
실제 시연 영상은 F 학점 피하기에서 볼 수 있다.
발표를 준비하며 PPT를 만들고, 대본을 쓰고, 수없이 리허설했다. 하지만 발표장에 올라가서는 대본을 내려놓았다. 대신 세 가지를 설명했다.
- 왜 이 게임을 만들었는가
- 어떻게 구현했는가
- 어떤 기능이 있는가
게임 플레이 영상도 보여줬다. A+ 학점을 받는 학생과 F 학점을 주는 교수의 모습을 직접 그려 넣었고, 특히 F 학점을 주는 교수의 장면에서는 관객이 많이 웃었다. 발표를 마친 뒤, 우리 팀은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표가 괜찮았던 이유는 단순히 태도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학생이라면 한 번쯤 걱정해봤을 F 학점이라는 상황을 먼저 보여줬고, 기술 설명보다 게임 속 장면을 앞에 배치했다. 관객은 게임의 목적을 바로 이해하고 발표를 따라올 수 있었다.
공감할 수 있는 문제 → 내가 만든 해결 방식 → 실제 결과와 장면
이 경험이 면접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다만 준비된 상황에서는 구조가 있을 때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보여줬다.
발표와 면접은 다른 종류의 말하기였다
발표에는 준비할 시간이 있다. 전달할 순서도 미리 정할 수 있다. PPT가 기억을 도와주고, 반복해서 리허설하면 내용이 몸에 들어온다.
면접은 다르다.
질문을 듣고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정해야 한다. 어떤 경험을 꺼낼지도 선택해야 하고, 경험 속 근거와 기술 키워드도 연결해야 한다. 동시에 표정, 시선, 목소리까지 신경 써야 한다.
즉석 면접에서는 다음 과정을 한 번에 처리해야 한다.
질문 이해 → 답변 방향 선택 → 근거 회수 → 기술 키워드 연결 → 짧은 문장으로 설명
이번 면접에서 드러난 부족함 중 하나는 이 구조를 빠르게 실행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 생각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생각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순서로 다시 배열해야 한다.
생각하는 순서와 설명하는 순서는 다르다.
실제 답변 방식도 바꾸려고 한다. 이전에는 상황 설명부터 길게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질문에 대한 결론이 늦게 나왔고, 말하는 동안 핵심 근거를 놓치기도 했다. 앞으로는 결론을 먼저 말하고 필요한 근거를 붙이려고 한다. 문장을 길게 늘이기보다는 짧은 문장을 이어 붙이는 편이 상대방의 이해를 돕는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하얘질 때도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으려고 한다. 긴장되면 긴장된다고 말하고, 잠깐 심호흡한 뒤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답변을 잘하는 일은 긴장하지 않는 일이 아니라, 긴장한 상태에서도 답변 구조를 다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긴 문장을 고치면서 말하는 구조를 봤다
말하기를 연습해보려고 정흥수의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를 읽기 시작했다. 출퇴근길과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었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복식호흡이었다.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톤으로 말하려면 목소리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호흡부터 안정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발음 연습도 시작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턱과 입술과 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익히고 있다.
그러다 의외의 문제를 발견했다.
나는 GPT에게 프롬프트를 입력할 때 문장을 지나치게 길게 쓰고 있었다. 한 문장 안에 배경, 질문, 조건, 기대 결과를 모두 넣었다. 나에게는 익숙한 생각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핵심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래서 문장을 짧게 나누기 시작했다.
문제는 무엇인가.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기준으로 답변하면 좋은가.
짧은 문장은 단순히 읽기 편한 문장이 아니다. 상대방이 내용을 빠르게 처리하도록 돕는 구조다. 말하기도 같았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생각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모양으로 건네는 일이었다.
면접에서는 구조를 즉시 만들어야 한다
『신 로지컬 씽킹』의 제6장 ‘새로운 논리적 사고의 틀, QADI 사이클’을 공부하면서 ‘생각하는 순서와 설명하는 순서는 다르다’는 취지의 문장이 인상 깊었다. QADI는 질문(Question), 가설 설정(Abduction), 연역적 함의 도출(Deduction), 귀납적 결론(Induction)을 순환시키는 사고 틀이다. 책의 목차와 서지 정보
내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순서로 다시 배열해서 전달해야 한다. QADI 사이클의 네 단계를 면접 답변 순서로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QADI를 공부하며 얻은 ‘질문을 붙잡고 생각을 배열한다’는 관점을 내 면접 답변 훈련에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면접에서는 다음 순서로 답변하려고 한다.
결론 → 상황 → 내가 한 선택 → 근거와 trade-off → 결과와 배운 점
면접 답변 구조. 질문을 이해한 뒤 결론, 상황, 선택과 근거, 결과와 배운 점 순서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가장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아래 답변은 실제 면접 답변의 재현이 아니라, 이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다.
처음부터 상황 설명을 길게 시작하면 답변의 핵심이 늦게 나온다. 먼저 결론을 말한다.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정산 데이터의 불일치를 줄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다음 상황을 설명한다.
여러 시스템에서 생성된 금액과 상태가 서로 달라 수작업 확인이 반복됐습니다.
내가 한 선택을 말한다.
데이터 생성 시점과 검증 기준을 분리하고, 공통 식별자를 기준으로 대사하도록 구조를 바꿨습니다.
선택의 근거와 trade-off를 설명한다.
처리 속도만 높이는 방법도 있었지만, 오류 원인을 추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정확한 검증 흐름을 만들고 이후 성능을 개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과와 배운 점을 말한다. 이 구조를 쓰면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해도 답변의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말하기는 비언어적 태도까지 포함한다
말하기를 말의 내용으로만 좁히면 놓치는 것이 있다. 면접에서 신뢰감을 만드는 요소는 말의 내용만이 아니다.
- 안정적인 자세
- 자연스러운 시선
-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
- 정확한 발음
- 적절한 표정
이 요소들이 함께 작동한다. 다만 모든 것을 한 번에 고치려고 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진다. 먼저 바꿀 수 있고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책상 정리, 앉는 자세, 모니터 위치, 수면과 체력 관리도 말하기 훈련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몸이 불안정하면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일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말하기 훈련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하나씩 확인하는 편이 낫다.
오늘은 말의 속도, 내일은 시선, 그다음은 문장 끝을 점검한다.
앞으로의 훈련
지금은 다음 루틴을 만들고 있다.
- 책이나 영상을 10분 동안 공부한다.
- 핵심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 1분 동안 소리 내어 설명한다.
- 녹음한 내용을 다시 듣는다.
- 결론, 근거, 빠진 키워드 하나만 확인한다.
이력서 면접 연습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질문을 하나 고른다. 답변의 결론을 먼저 정한다. 실제 경험을 붙인다. 내가 한 선택과 그 이유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결과와 배운 점을 정리한다.
아직 모의 면접을 다시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방법이 실제 면접 결과를 바꿨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은 이번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답을 찾고, 다음 대화에서 시험해보려는 단계다.
목표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받았을 때 잠깐 멈추고, 핵심을 고르고,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순서로 설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전 캡스톤 발표에서 내가 잘했던 것도 결국 같은 일이었다. 공감할 수 있는 문제를 제시하고, 내가 만든 해결 방식을 보여주고, 청중이 기억할 장면을 남겼다.
이제 그 방식을 면접과 일상적인 대화에도 적용해보려고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 생각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모양으로 건네는 일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타고나는 것보다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