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배울수록 붓펜이 필요했다
AI를 배울수록 붓펜이 필요했다
새로운 AI 활용법을 익힐수록 이상하게 붓펜이 필요해졌다. 문제는 기술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따라갈수록 내가 나를 더 자주 채점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개발 트렌드를 따라가고, 이직을 위해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반복하는 동안 그 감각은 더 선명해졌다. 오늘은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결과를 냈는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다음 기회에는 어떻게 더 잘 증명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하루 전체가 이 질문으로만 채워지면 삶이 평가표처럼 변한다. 잘한 날에는 잠깐 안도하고, 거절당한 날에는 내가 통째로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거창한 취미가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서예라고 부르기엔 조금 가벼워도 괜찮았다. 오히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커다란 벼루나 좋은 화선지가 아니라, 퇴근 후 책상 위에 바로 꺼낼 수 있는 작은 시간이었다.
직접 계기는 한 영상이었다. 다만 그 장면이 유독 오래 남은 이유는 이미 내가 AI와 이직 준비의 속도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줄여서
안원잘부의 미나미의 본모습
편을 봤다. 2026년 6월 28일 공개된 27분 46초짜리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리센느 멤버 미나미를 보는 마음이 단순했다. 노래를 잘하고, 무대를 잘 하고, 오랜 시간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버틴 사람. 내 머릿속 이미지는 거기까지였다. 화면 속에서 묵묵히 서예를 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내가 보고 있던 사람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화려한 무대 위의 사람이 아니라, 무대 밖에서도 자기 시간을 오래 연습해온 한 사람처럼 보였다.
영상 중반부에는 서예 학원 교실로 보이는 공간이 나온다. 벽에는 연습한 글씨와 작품들이 빼곡히 붙어 있고, 미나미는 종이 앞에 앉아 붓을 잡는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서예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보다, 내 눈에는 바깥에서 계속 평가받는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던 미나미가 붓을 잡는 시간을 자기 삶 안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보였다.
안원잘부 '미나미의 본모습' 영상 15분 20초 부근에서 미나미가 서예 학원 교실에 앉아 붓을 잡고 있는 장면 캡처
출처: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 미나미의 본모습, 15분 20초 부근 캡처.
나는 서예 교실의 리듬이 부러웠다.
그 뒤로 쿠팡에서 붓펜을 주문했다. 주문 목록에 남은 제품명은 쿠레타케 붓펜 22호 + 리필용 3p였다. 붓펜 본품에 리필 카트리지 3개가 함께 들어 있는 구성이고, 가격은
만원 남짓이었다. 퇴근 후 책상 위에 붓펜 하나와 연습용 종이 몇 장만 꺼내면 됐다.
늘 바깥의 것을 쫓고 있었다
개발자로 살다 보면 바깥의 변화를 계속 의식하게 된다.
프레임워크는 바뀌고, AI 도구는 매주 새 기능을 내놓고, 좋은 개발자가 갖춰야 할 기준도 계속 높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직을 준비할 때는 압박이 더 선명해진다. 내 경험을 다시 정리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면접에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결과를 기다린다.
이 과정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하루가 가득 찰 때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원래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배움은 즐거움보다 압박에 가까워졌다. 새로운 AI 활용법을 보면 호기심보다 먼저 불안이 올라왔다. 저걸 모르면 뒤처지는 건 아닐까. 지금 내 방식은 낡아지는 건 아닐까. 이미 잘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직 과정에서 거절을 겪으면 불안은 더 날카로워진다. 거절은 한 회사의 판단일 뿐인데, 마음은 그것을 내 전체에 대한 판정처럼 받아들인다. 머리로는 안다. 타이밍, 핏, 포지션, 경쟁률, 회사의 상황까지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마음은 자꾸 단순한 문장으로 도망간다.
나는 아직 부족한가 보다.
나는 아직 부족한가 보다라는 문장을 계속 들여다보는 일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것과,
상처 입은 마음을 계속 만지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다음 행동을 만들지만 후자는
나를 계속 같은 자리로 돌려보낸다.
나는 이 차이를 알면서도 자주 후자에 머물렀다.
붓펜은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렇게 책상 위에 붓펜을 올려두고 나서야 알았다.
정식으로 먹을 갈고, 붓을 씻고, 화선지를 준비하는 서예는 아직 나에게 너무 멀었다. 시작부터 거창하면 또 하나의 숙제가 될 것 같았다. 잘해야 하는 취미, 장비를 갖춰야 하는 취미, 남에게 보여줄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취미가 되는 순간 나는 금방 지칠 것 같았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실력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쿠레타케 붓펜은 시작점을 낮춰준다는 점에서 적당했다. 뚜껑을 열면 바로 시작할 수
있고, 실패해도 버릴 종이 한 장이면 충분하다. 준비 시간이 길지 않으니 핑계도
줄어든다. 유튜브로 붓 잡는 법과 기본 획을 찾아보며, 처음에는 유명한 사자성어부터
천천히 적어봤다. 진인사대천명, 백화요란, 대기만성처럼 뜻이 익숙한 말을
고르고, 가족들의 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어보기도 했다.
붓펜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컴파일 에러가 없다. 면접관도 없다. 트렌드도 없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조차 사실 중요하지 않다.
종이에는 선이 남는다.
힘을 너무 주면 획이 둔해지고, 마음이 급하면 선이 흐트러진다. 손목이 들뜨면 끝이 어색하고, 호흡이 가라앉으면 조금 더 단정해진다. 신기한 것은 남은 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붓펜은 나를 평가하지 않지만, 내 상태를 숨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다.
코드는 틀리면 고치면 된다. 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다시 쓰면 된다. AI와 대화할 때도 프롬프트를 바꾸고, 결과를 다시 요청하고, 마음에 드는 버전을 고르면 된다. 반면 종이 위의 획은 한 번 지나가면 그대로 남는다.
처음에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삐끗한 선을 보면 종이를 구기고 싶었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한 획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음 획을 조금 더 천천히 가져가면 전체의 균형이 조금은 돌아온다. 완벽한 한 획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한 글자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삶도 종종 비슷한 방식으로 굴러간다.
실패한 면접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어긋난 관계의 감정을 완전히 되감기도
어렵다. 이미 지나간 선택을 깨끗하게 지우는 Ctrl + Z는 현실에 없다. 그렇다고
삐끗한 한 획 때문에 전체 글자를 버릴 필요는 없다. 다음 획의 무게를 조절하고, 남은
공간을 다시 보고, 끝까지 써 내려가면 된다.
붓펜을 잡는 일은 이런 태도를 작게 연습하게 한다.
내실은 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덜 흔들리는 일이다
예전에는 내실을 더 많이 채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프로젝트를 만들고, 더 많은 글을 쓰고, 더 많은 도구를 익히는 것. 물론 축적은 중요하다. 실제로 개발자는 계속 배워야 하고, 커리어를 바꾸려면 준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많이 채웠는데도 쉽게 흔들리는 날이 있었다.
흔들리는 날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인풋이 아니었다. 새로운 강의도, 더 화려한 툴도, 더 자극적인 성공담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무언가를 더 넣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쌓인 것들을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안원잘부 미나미 편에서 받은 인상도 비슷했다. 내가 미나미의 삶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화면 속 서예 학원 장면에서, 바깥의 화려함과 별개로 정해진 시간에 몸을 앉히고 손을 움직이는 태도를 봤다. 팬으로서의 호감보다 더 사적인 울림이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AI 활용법을 익히는 시간도 나를 위한 시간일 수 있다. 개발 트렌드를 공부하는 시간도 나를 위한 시간일 수 있다. 이직을 준비하는 시간도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배움과 준비가 계속 바깥의 기준을 향해 있을 때,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정작 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
붓펜을 쥐는 시간은 방향이 다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지 않는다. 이력서에 적을 수도 없다. 생산성 도구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투자 대비 결과를 따지면 효율이 좋은 활동도 아니다. 바로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살린다.
쓸모가 없어서,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된다.
취미는 도망이 아니라 돌아올 자리다
취미를 가진다는 말을 예전에는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
남는 시간에 하는 일, 스트레스를 푸는 일, 취향을 표현하는 일 정도로 여겼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취미는 삶의 본업에서 도망치는 통로라기보다, 본업의 언어에서 잠시 나를 데려오는 자리일 수 있다.
이 자리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내 경우에는 만원 남짓한 쿠레타케 붓펜 세트 하나면 충분했다. 리필 카트리지까지 포함된 구성이라도 시작은 가벼웠다. 먹을 갈지 않아도 된다. 좋은 도구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누가 봐도 훌륭한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붓펜을 잡는 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돌아오는가다.
하루 종일 바깥의 언어로 나를 설명하고 돌아온 날, 나는 종이 위에 조용히 한 글자를 쓴다. 오늘의 불안이 조금 흔들린 선으로 남기도 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은 날은 획의 끝이 조금 단정해지기도 한다. 결과가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
붓펜 앞에서는 내가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다시 새로운 도구를 배울 것이다. 또 다른 기술 트렌드를 따라갈 것이고, 다음 기회를 위해 나를 설명하는 문장을 고칠 것이다. 거절도 다시 겪을 수 있다. 이 모든 일을 멈출 생각은 없다. 다만 속도를 따라가는 하루 사이에 작은 자리 하나를 두려고 한다.
화면을 끄고, 붓펜 뚜껑을 열고, 종이 위에 선을 긋는 자리.
종이 앞에서는 아무도 나를 채점하지 않는다. 나도 나를 채점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획을 받아들이고, 다음 획을 조금 더 단정하게 가져갈 뿐이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내실은 대단한 성장담이 아니라 이런 시간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빠르게 따라잡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남에게 보여줄 결과를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나에게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하나 갖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거창한 준비 없이 붓펜 뚜껑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