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 일곱 통
평범했던 저녁
2026년 3월 12일 목요일 저녁 7시.
그날 저녁은 그냥 평범했다. 회사에 조금 늦게까지 남아 있었고, 특별한 일도 없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책상 위에 뒤집어 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기도 전에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가라앉았다.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 네 통, 아버지의 부재중 전화 세 통.
두 분은 보통 전화를 한 번만 남기고 기다리신다. 그래서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좋은 일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전화를 걸었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슬픔보다 멍함이 먼저 왔다. 아버지 쪽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버지가 어릴 때 이미 돌아가셨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내가 어린 시절을 실제로 기억하는 유일한 할아버지였다.
집 근처 강가에서 같이 물고기를 잡으려고 물장구를 치던 날, 물에 고추장만 풀고 국수면을 삶아 주시던 투박한 국수. 그런 장면들이 뜬금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향으로 가는 길
급한 일을 정리하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 아기를 처갓댁에 맡기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출발했다. 필요한 시간은 다섯 시간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눈이 많이 내렸다. 어느 순간에는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발이 굵어졌다. 차 안에서는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음악은 작게 틀어 두었지만, 가사를 듣고 있었다기보다는 졸지 않으려고 따라 흥얼거린 쪽에 가까웠다. 밖의 도로는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날 밤만큼은 시간이 이상하게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변하지 않은 집
새벽 두 시쯤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집 안은 조용했고, 모두 잠들어 있었다.
거실 불은 꺼져 있었고 식탁 위에는 바비큐 치킨이 놓여 있었다. 예전에 아내와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기억해 두셨던 것 같다. 저녁도 못 먹고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우리 먹으라고 아무 말 없이 사다 두신 치킨이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는데, 집은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일 아침에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장례식장
다음 날 아침 일찍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빈소로 들어가자 향 냄새가 먼저 났다.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상복을 입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돌아가신 분이 길을 잃지 않도록 가족들이 곁을 지키는 의미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붙잡기 위해 이런 절차가 필요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마지막 인사
빈소 앞에는 외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얼굴은 내가 기억하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죽음이라는 단어가 잘 붙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가족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갔고, 나도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잠들어 계신 것처럼 보였다.
관을 직접 들고 외할아버지를 모셨다. 누군가의 삶이 이렇게 한 번의 동작으로 다음 장소로 옮겨진다는 사실이 그 순간 유난히 또렷했다.
장례가 끝난 뒤
장례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가자 빈소는 조금씩 조용해졌다. 나는 한동안 영정 사진 앞에 서 있었고, 향이 꺼지지 않도록 다시 피웠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 말은 내 일이라기보다 문장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로는 조금 달라졌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게 꼭 삶을 어둡게 만드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미루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더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남은 기준
그날 이후로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오늘이 마지막 하루라면, 나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 하루를 보내도 괜찮을까.
대부분 내일이 있다고 믿고 산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연락 한 번,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자주 뒤로 미룬다.
Memento Mori라는 말을 예전에는 멋있는 문장 정도로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삶을 두려워하라는 뜻이라기보다, 미루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미루지는 말라는 말에 가깝게 느껴진다.
거창한 기준은 아니다. 남은 건 이 정도다.
- 연락을 미루지 않는다.
- 가족에게 표현할 수 있을 때 표현한다.
- 오늘 끝내야 할 중요한 일을 내일의 나에게만 넘기지 않는다.
나는 이제 가끔 다시 묻는다. 오늘이 마지막 하루라면,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