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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해 보이는 사람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성숙해 보이는 사람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

유니콘 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 기술 공부에 몰두하던 시기가 있었다. 더 좋은 코드를 만들고, 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이력서에 남길 경험을 쌓는 일. 이직을 준비하는 개발자에게는 꽤 명확한 방향처럼 보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이직한 사람들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술력이 좋아 보이는 것과 별개로, 그들은 대체로 성숙해 보였다.

그 성숙함은 스펙이나 회사 이름에서만 느껴지지 않았다. 목소리는 대체로 중저음이고 안정적이었다. 듣는 사람을 급하게 만들지 않는 말투였다. 회의에서는 자기 일과 직접 관련 없는 이야기에도 관심을 보였다.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도울 부분이 있는지 찾으려 했다.

달빛 아래 밤바다를 바라보는 두 원창작 생명체달빛 아래 밤바다를 바라보는 두 원창작 생명체

질문하는 방식도 기억에 남는다. 상대가 오해할까 봐 “순수한 궁금증인데요”라고 먼저 말하는 사람을 봤다. 질문 내용만큼 상대가 받아들이는 감정까지 신경 쓰는 태도였다. 누가 갑자기 “어떤 일을 해오셨어요?”라고 물어도 버튼을 누른 것처럼 자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사람도 있었다.

조금 가볍게 말하면, 흔히 말하는 “안정형 남친 혹은 여친”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계속 생각했다.

성숙하다는 건 뭘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뭘까. 호감을 받는 사람과 신뢰를 받는 사람은 같은 사람일까. 저 사람들은 무엇을 알고 있어서 저렇게 안정적으로 보일까.

기술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감각

이 질문은 처음에는 꽤 현실적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내 생각을 정리해 말하고,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질문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기술을 잘하는 것과 별개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반대로 나는 말하는 자리에서 자신감이 부족했다.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고 더 큰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는 분명했다. 그런데 회의나 발표처럼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빨개지기도했다. 호흡은 뜨고,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는 스스로 들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의 구조가 잡히지 않아 문장을 길게 늘여 말했고, 내가 한 말을 듣는 사람이 다시 정리해서 되묻는 일도 있었다.

자존감은 높은데 자신감은 바닥인 상태였다.

성숙해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불안이 함께 왔다. 저 사람들처럼 되려면 기술만 공부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 삶을 바라보는 기준도 같이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질문이 인문학으로 이어졌다.

인문학에서 찾은 두 가지 기준

처음 읽은 책 중 하나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었다. 그 책에서 오래 남은 단어는 ‘관심’이었다. 사람을 설득하거나 호감을 얻기 위한 기술보다 먼저, 상대 자체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일.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싶어 하는 태도 말이다.

그다음 《명상록》을 읽으며 또 다른 기준을 얻었다.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힘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회의에서 모두가 내 말을 좋아하게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호흡을 어떻게 준비할지, 어떤 문장으로 말할지,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들을지, 내 생각을 얼마나 성실하게 정리할지는 어느 정도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두 기준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 관심: 상대를 빨리 판단하기보다 더 알고 싶어 하는 태도
  • 통제의 구분: 바꿀 수 없는 평가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에 집중하는 태도

이후 유튜브에서는 인문학과 성숙에 관한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그러다 알고리즘이 나에게 세계문학을 추천하는 한 영상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영상은 유명한 책을 많이 읽는 일이 세계문학의 가치는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은 평생 말하고, 듣고, 쓰며 살아간다. 문학을 읽으면 “이런 표현도 가능하구나”를 발견하고, 한 작가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따라가며 문장과 함께 사고도 깊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는 원래 말하기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해 전달하는 일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문학은 나와 먼 고전의 세계가 아니라, 평생 해야 할 말하기, 듣기, 쓰기를 더 잘하기 위한 공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읽는 속도보다 멈추는 시간

세계문학에 관심을 가진 채 서점에 갔던 날도 기억난다. 처음에는 오래된 고전들이 너무 멀게 느껴져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 심리학 코너에 표지에 이끌려 《다크심리학》 책을 구매해서 읽게되었다. 책 내용 중간 중간 《군주론》이 자주 언급되어서 궁금해졌다.

그 호기심을 시작으로 서점에 갈 기회가 생겼을때 《군주론》의 표지를 표니 명문대에서 필수 교양 서적으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눈을 돌려보니 《명상록》, 《자유론》도 필수 교양 서적이라고 했다. 즉시 읽기 시작하며 곧 알게 됐다. 이 책들은 빨리 읽고 덮는 책이 아니었다.

한 번에 많이 읽는 것보다 소수의 페이지를 천천히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더 중요했다. 어떤 문장을 읽고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고 멈추게 되는 책들.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책이 아니라, 오래 곁에 두고 계속 다시 열어야 하는 책들이었다.

인문학이 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질문을 오래 붙잡게 한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며 성격으로 빨리 결론내리기 전에, 그 사람은 어떤 조건 속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지 생각하게 한다. 내 불안을 실패의 증거로 단정하기 전에, 지금 내가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한다.

말하기는 읽는 일과 별개로 훈련했다

인문학을 통해 말하기가 저절로 좋아진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구분하고 싶다. 말하기는 훈련했다.

정흥수의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를 읽으며 연습을 시작했다. 복식호흡으로 발성하는 방식. 입술과 턱, 혀의 위치를 의식하며 발음하는 연습. 긴 문장 하나를 힘겹게 말하려 하기보다 짧은 문장 여러 개로 핵심을 전달하는 방식.

최근 2주 동안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최소 20분씩 연습했다. 회의에서 달라진 점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말하기 전에 평가받을 생각부터 했다. 그러니 호흡은 불안정해지고 머릿속 문장은 엉켰다. 말한 뒤에는 상대가 다시 정리해주거나 되물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그 과정이 줄었다. 상대가 한 번에 핵심을 이해하는 순간이 늘었다. 아직 완성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말하는 일을 피하지 않고 훈련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여기서 인문학과 훈련은 다른 역할을 했다. 훈련은 실제 말하기를 바꿨다. 인문학은 왜 그렇게 말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붙잡게 했다.

관심은 관계를 넓힌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다 보면 업무 이야기만으로도 대화가 이어지는 관계가 있다.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같은 문제를 해결하며, 서로의 역할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다 《인간관계론》에서 읽은 ‘관심’을 실제로 옮겨보기 시작했다. 결론이나 조언을 서두르기보다,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조금 더 물어보려고 했다.

그 질문들은 대화를 길게 이어가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업무 관계에만 머물던 대화가 한 사람의 생각과 삶을 알아가는 대화로 넓어질 수 있다는 감각을 얻었다.

관심은 말을 잘하는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태도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상대를 궁금해하지 않으면 대화는 결국 내 이야기의 확장에 머문다.

쉽게 결론내리지 않는 연습

인문학이 내게 준 것은 누군가를 꿰뚫어 보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쉽게 결론내리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 사람의 말투나 표정만 보고 성격을 단정하지 않는 것
  • 상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는 것
  • 통제할 수 없는 평가에 매달리기보다 준비와 호흡과 문장을 다듬는 것
  • 좋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관심을 가지고 잘 듣는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인문학을 공부한다.

성숙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시작했다.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법을 배우고, 내 생각을 안정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읽는다.

아직 내가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예전보다 사람을 조금 더 오래 듣고, 회의에서 한 번 더 차분히 말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연습하게 됐다.

지금의 나에게 인문학은 교양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기 위한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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